내가 행복했던 기억과 좋아하는 부분들을 골라 나만의 방식대로 꼴라주를 한 작업이다 보니 그려내는 동안 기분이 좋아졌고,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에스키스 분위기는 이렇게 진행될 예정이다. 여기서 살짝 변동이 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려나가면서 전체적으로 맞춰갈 것이다. 그림에도 봄이 찾아온 것 같아 마음이 포근해진다.
그림의 포인트를 설명하자면 일단 모과가 그림마다 등장을 한다. 모과의 의미가 무엇일까?
모과는 생김새가 사과처럼 부드럽게 떨어지는 곡선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모과를 확대해보면 다양한 언덕이 있는 것 처럼 울퉁불퉁한 표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갈색 반점이 생기기 시작하고 초록빛과 붉으스름한 반점을 가지고 있기도 한다. 이러한 모과의 향기는 부드러운 파우더 처리가 된 가루를 만지듯 부드럽고 포근하며 은은하다. 독하지 않은 향기로 방에 나두기만 하면 금새 달달한 향이 퍼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모과를 보면서 은은하고 포근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할아버지 집에서 하나씩 모과를 챙겨올 때, 그 모과가 썩을 때까지 자신의 향기와 형태를 유지하는 기간은 길지는 않지만 충분히 나에게 행복을 선사해줬다. 청으로도 먹을 수 있고 차로도 먹을 수 있는 모과는 사과만큼 즐겨 먹는 과일은 아니지만서도 자신의 에너지를 잔잔히 분출하고 있다. 그런 모과에게 내 자신을 투영시켜 모과가 가진 분위기와 힘을 중심으로 잡게 되었다.
모과 옆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수국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다. 원래 능소화를 할 계획이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넣고자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초록색 수국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전에 유화로 수국작업을 한적이 있었다. 툭툭 던지는 스타일로 최대한 묘사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그려내려고 하는 내 강박을 줄이기 위한 연습이었다. 이번에는 담백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수국을 그려낼 것이다. 초록을 띄며 붉음을 가지고 있는 수국은 얼만큼 오묘한가.
전에 길을 가다가 수국이 잔뜩 피어있는 화단을 발견했다. 이날 덕분에 그림을 그릴 때 당시 찍었던 사진으로 부터 영감을 많이 얻는다. 수국과 풀잎들로 감싸진 이곳은 그들의 축제 였다. 길을 걷다 우연히 초대된 축제에서 나는 행복을 얻었다. 그들끼리 얽혀있으면서 생기는 연결성 그리고 폭신함이 내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원래 나는 초록을 좋아한다. 초록을 좋아하다 보니 초록 수국을 좋아하는 것도 있겠지만, 꽃말이 한결같은 사랑이라는 정보를 알게 된 뒤에 더 매력에 빠지게 된 것 같다. 내 자신을 생각해보면 한결같다는 말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미숫가루와 호밀빵을 아침으로 3년째 먹고 있는데 이렇게 한결같은 사람이 어디있겠냐만.. 물론 먹던 것만 먹고, 좋아하는 부분이 쉽게 바뀌진 않으며 다 연결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점점 깊게 들어가는 편이다. 이러한 한결같음을 가지고 있는 수국이 내 그림안에 들어가 있으면 하는 바램에 오른쪽을 꽉채워 그리게 되었다.
동그라미 3개가 밑부분에 모여있다. 그리고 위에서는 세모난 빛이 내려온다. 일단 나는 숫자 3을 좋아한다. 3개가 나란히 놓여져있을때 신호등이 생겨나면서 안정감을 느낀다. 동그란 곡선을 좋아하는 나는 원형모양을 좋아하는데 이를 이용해서, 위에서 내려오는 빛의 뭉침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노을이 내려올 때 한강에 비춰지는 오렌지 빛의 석양을 손으로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이를 손에 담아 내면 동그란 형태로 담기지 않을까라는 호기심과 조각으로 떼어낼 수 있다면 저렇게 포근한 빛을 뾰족한 부분이 담겨져 있는 형태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위에서 직선으로 떨어지는 빛을 이렇게 담아냈다. 동글 동글 동글
왼쪽 밑부분에는 그림자가 담겨져 있다. 우리집 화분을 지나며 생기는 빛들. 빛들의 그림자가 동글동글 전구처럼 자리를 빛내주고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사진을 계속 찍었었다. 우연성에서 나오는 행복은 사람의 기분을 좋아지게 해준다. 인위적으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부터 나오는 형상이기에 자연의 매력에 한층 더 빠지게 된다. 위에서 말했 듯 석양이지는 그시간, 그림자가 제일 긴 그시간에 나오는 이 매력적인 현상은 매일 그시간을 기다리게 만든다. 그림자 조차도 날 기쁘게 만들다니!
전체적인 부분의 설명은 이러하다. 아직 더 찾아가는 과정이기에 의미가 더 찾아질 수도 있고 깊어질 수 도 있다. 일단 지금의 생각을 정리해서 담아놓고 싶었다. 앞으로 50호 작업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