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이라는 감정을 하나의 공간으로 그리게 된 이유?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아예 벗어난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들이, 불안을 생각나지 않게 해줬던 분위기가 낯선 섬에 날 던져두는 듯 했다. 내가 생각정리를 할 수 있도록 선택한 시간과 순간들.
여행을 떠날 대의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흥분과 일상과 분리된 듯한 붕뜬 느낌은 잠시 해방감을 준다.
깊게 공간 속에 스민다는 것은 강렬한 몰입도와 사람의 감정을 흔들 수 있다. 불안함을 떨궈내고 싶었던, 그래서 만들어진 공간은 불안함으로부터 시작이 된 것이다. 무엇을 해야만 할 것 같고, 가만히 있으면 죄처럼 느껴지는 난 빽뺙하게 날 둘러 쌓아야만 했다. 공간 속에 있으면 안전하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내가 만들어 나가는 재미도 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안정감을 필요로 하는 삶을 산다. 늘 불안하고 걱정하는 일상 속에서 안정을 찾기 위해 각자만의 방법을 찾아나선다. (오감의 감정과 내면의 공간) 작가의 머릿속으로 부터 진정한 세계, 자아를 찾아나서는(불안을 바탕으로) 과정에서 독자적으로 서있는 섬이라는 존재가 등장했다. 우리는 '갓생' 이라는 단어로 자신을 자학하며서 까지 가는 삶을 살고있다. 어쩌다 육각형 인재에 기준치가 생겨났는 가. 작가 또한 이런 세계에 제대로 고충을 겪고 있다. 그림을 그려 나가면서도 강박이 생긴다. 하지만 이를 즐기것과 괴로워함은 한끗 차이로 사람의 감정을 흔들어 놓는다.
-> 가장 나다워야 할때다. 이게 행복. 우리는 불안을 지우면 행복할 것이라는 전재가 있다. 늘 곁에 불안을 두면서도.
요즘 불안을 많이 느끼는 것은 언제 인가?
-그림을 계속 그려나가며 생계가 유지가 될 것인가
-더 작업을 잘 해내고 싶다. 난 발전하고 있는가?
-과한 욕심에 사로잡혀서 억지로 짜내는 작업을 하고 있진 않은가?
-불안을 이용한 생명체를 그려나가는데 한계가 있으면 어떡할까
-건강해야하는데 과한 욕심으로 화를 부를 때가 많다.
=> 일단 하면서 고민과 같이 살아가는 인생이다. 불안에 잠식되어 나를 잃어버리지 말것..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 느끼고 있는 감정이다. 혹시 모를 상황에 물음표는 늘 양면적인 존재이다. 이것 또한 머릿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상들이다. 직접 실천하면 결과는 굉장히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간다. 이것은 역시나 예측할 수 없다.
비교가 굉장히 쉬운 세상에 살고 있다. 여기서는 부러움과 박탈감 또는 에너지를 얻을 수도 없다. 늘 내길을 걸어가야하는 것이 남들이 뭐라건! 해낸다! 라는 마인드가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편할 것이다. 사회 속에 담겨져 있는 한 위기와 흔들림이 없을 수 없다. 인생이 너무 잠잠하면 재미없지 않을까... 이렇게 언덕을 마주했을 때 이겨내는 법을 배우고 성장하게 된다. (이걸 작성하고 있는 요즘 일상이 가장 잠잠하다. 근데 행복하게 살고 있긴하다. 재미없진 않은데.. 저때는 이 감정을 몰랐으니 그냥 적을 것이다.)
남은 아예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고 분명히 부러움 한부분 그것만 우리를 흔들어 놓는것이다. 이 감정을 잘 이용해서 내가 본받고자 한다면, 부러움의 응어리가 작아 질 수도 있지 않을 까? 싶다.